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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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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과 도시 공간 === 검은 10년의 불안은 대형 테러만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시설 방화와 협박, 소규모 총격, 출퇴근 중 습격이 반복되면서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이동 자체를 위험하게 느꼈다. 기업 임원과 법조인을 중심으로 경호, 출입자 확인, 우편물 검사가 확대되었고, 피해 위험은 가족과 동료에게도 전가되었다. 1977년 종업원 500명 이상 기업의 임원 대상 조사에서는 약 71%가 경호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대기업 임원이라는 제한된 집단에 관한 것으로, 전체 기업인이나 일반 시민에게 확대 적용할 수 없다. 1978년 방탄 차량 등록 대수는 1972년의 약 14배에 이르렀으나, 이러한 상대적 증가는 초기 등록 대수가 적었다는 조건과 함께 보아야 한다. 주요 관공서에는 차량의 접근을 통제하는 구조물과 상설 경비가 설치되었다. 청사 앞 도로와 광장은 접근 편의보다 경비를 우선하는 형태로 바뀌었고, 일부 시설은 폭력의 쇠퇴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우편물을 이용한 폭발물 배달 사건은 88건으로 집계되며, 주요 기관이 우편물 취급 절차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대도시에서 근교로의 이주와 일부 전문직의 국외 이주도 증가했다. 1975~1980년 국외 이주는 이전 5년보다 34% 늘었다. 다만 이 변화에는 폭력뿐 아니라 고용과 임금, 주택과 생활환경이 함께 영향을 주었으므로, 증가분 전체를 테러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이주 규모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고 귀국이 늘면서 일부 변화는 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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